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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ing sun above the blue East Sea DONGHAE 해오름의 고장 동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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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사

삼화사

삼화사

  • 지정번호전통사찰 10호
  • 지정일1988. 5. 28
  • 소재지무릉로 584(삼화동)
  • 문의처삼화사(☎534-7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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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동 무릉계곡, 두타산(1351m)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삼화사는 인근 천은사 .영은사.지상사 등과 더불어 영동 남부지역의 가장 중심적인 사찰로서 선종의 종풍을 가진 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으며 삼공암, 측연대, 중대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절과 관련하여 세가지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삼화사사직〉 .〈진주지〉등에 의하면, 이 절은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지장율사가 흑연대를 창건하여 그 시초가 되있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한편〈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말 굴산사의 개창주인 범일국사가 〈척주지〉에는 신라 흥덕왕4년(829)에 범일국사가 산에 들어와 불사를 지어 삼공암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와 아울러 현존하는 유물들을 감안하면 삼화사는 대체로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절은 본래 동쪽 약 1.3km의 반릉 부근에 있덨던 것을, 사찰을 포함한 인근지역일대가 1977년 쌍용양회 동해 공장의 채관권내에 들어가자 무릉계곡내에 있는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여러 가지 창건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삼화사는 고려 공민왕 16년(1367) 풍우로 퇴락된 것을 란옹스님이 중건하였으며, 조선 선조년간에 왜군들의 방화로 전소되었다.

현종 원년(1660)에 지금의 중대사터로 이건하여 중대사로 불리었다가 영조24년(1748)에 다시 구지에서 중건되어 삼화되어 삼화사로 하였다. 선조20년(1820) 절과 부속암자들이 전소되었다가 1824년에 조회염스님이 중건하였다. 1929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정원용.이기연 등 여러 사람들이 협력하여 중건하였으며, 1869(고종6) 화운과 덕추스님이 단청하였다. 1873년 (고종 10)에 신당, 1896년에 승당이 건립되었다.

이와같은 여러차례의 화재로 인한 소실과 중창을 거친 삼화사는 1905년에 삼척지방의 의병들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1906년 일본은 의병의 거점파괴라는 이유를 붙여 대웅전, 선당 등 200여 칸에 이르는 건물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 이듬해인 1908년 대웅전, 요사채, 칠성당 등을 다시 건립하여 유지해오다 1977년에 개발지역에 편입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삼화사의 구지에는 당시의 건물지와 기단축대, 초석일부가 지표에 노출되어 있고, 고려~조선시대의 기와편과 백자 등의 유물들이 산재되어 있다.

현재의 삼화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범종각,육화로,천왕문,요사채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문화재로는 삼층석탑과 철불, 목조지장보살상, 부도 및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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